"칼럼 [지속 가능 실험실]은 지구를 살리기 위해
고등학교 학생들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기상천외하고 실천적인 과학을 다룹니다."

마트에 갔을 때 볼 수 있는 풍경을 상상해볼까? 선명한 색의 토마토, 탐스러운 포도, 달콤한 과자, 신선한 돼지고기 등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여기서 스스로에게 매우 낯선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이들 중 무엇이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었고, 무엇이 수입된 것일까?"
우리는 이 질문을 얼마나 자주 떠올릴까? 이 낯선 질문을 일상에서 더 많이 떠올릴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농산물과 수입산 농산물을 구별하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환경을 위한 중요한 실천이기 때문이다. 특히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 관점에서 보면 그 의미는 더욱 커진다. 탄소 발자국은 특정 활동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을 의미하며, 이는 온실가스로 작용해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킨다. 전 인류가 협업하여 탄소 발자국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이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수입산 과일과 식품은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 오랜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대량의 화석연료가 사용되며, 일부 제품은 포장 작업을 위해 또 다른 국가를 경유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에서 잡힌 대구는 자국에서 판매되기 전에 중국을 거쳐야만 한다. 중국에서 대구를 손질하는 데 드는 인건비가 낮기 때문이다.
자국에서 생산되는 상품을 충분히 소비할 수 있음에도 외국 농산품을 소비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스페인에서는 아르헨티나에서 수입된 레몬이 식료품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정작 스페인에서 재배된 레몬은 다 소비되지 못한 채 땅에서 썩고 만다. 자국에서 충분히 생산하고도 외국 농산물을 소비하는 이러한 구조는 글로벌 유통망이 경제적으로는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환경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앞서 살펴본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글로벌 유통망이 터무니없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가장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형태라는 사실을 짚고 갈 필요가 있다. 만약 경제적으로 손해가 발생하는 구조라면, 이런 유통망이 유지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유통망이 환경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오직 경제적 논리로만 작동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불필요한 탄소 배출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비효율적인 글로벌 유통망을 개선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소비자들이 수입산 농산물보다 지역에서 생산된 로컬 푸드를 선호하는 것이다. 환경을 파괴하는 유통망 구조가 더 이상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는다면, 그 유통망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지역에서 생산된 로컬 푸드를 선택하는 것은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친환경 소비 방식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로컬 농산물로는 딸기, 토마토, 가지, 버섯 등이 있다. 그런데 바나나는?
바나나의 원산지는 인도와 말레이시아이다. Musa basjoo와 같은 냉해에 강한 품종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바나나는 열대 과일이기에 우리나라의 혹한기를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바나나는 거의 수입산이다.
바나나는 전 세계적으로 소비량이 많은 과일 중 하나로, 생산지에서 소비지 간의 거리가 매우 멀어 많은 탄소 발자국을 남기는 과일이다. 특히 바나나는 생산지에서 13.5도의 온도를 유지하는 특수 컨테이너로 운송되며, 유통업체가 원하는 시기에 맞춰 후숙 과정을 조절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에너지가 소비되어 탄소 배출이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사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코리안 바나나'가 있다. 바로 으름이다.

으름은 한국, 중국, 일본의 산지에서 자라는 야생 과일로, 특유의 달콤하고 크리미한 맛 덕분에 바나나와 비슷한 풍미를 지닌다. 더욱이 으름은 우리나라의 기후에 적응해 자연적으로 자라기 때문에 별도의 온실 재배나 장거리 운송이 필요 없다. 따라서 으름을 소비하는 것만으로도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으름이 바나나를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씨앗이다. 현재의 으름 열매는 씨앗이 과육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 과육을 씹는 것이 아니라 씨앗에 붙은 과육을 빨아 먹어야(?) 하는 형국이라, 먹는 과정의 불편함 때문에 대중적인 과일로 자리 잡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그런데 혹시 개량되기 전 바나나의 열매를 본 적 있는가?

충격적이게도, 개량되기 전 바나나는 지금의 으름과 비슷하게 과육 속에 씨앗이 잔뜩 들어 있었다. 우연히 씨를 맺지 못하는 돌연변이 바나나가 발견되었고, 이를 무성생식으로 복제하면서 우리가 아는 바나나가 대중화되었다. 그렇다면 같은 원리를 이용해 으름의 씨앗 문제를 해결한다면 으름 역시 바나나 못지않은 국민 과일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씨 없는 과일을 개발한 사례는 이미 많다. 씨 없는 수박, 씨 없는 포도 등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에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해 작물의 씨앗 크기를 줄이는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으름 역시 이러한 육종 기술을 적용하면 보다 대중적인 과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만약 씨 없는 으름이 보급된다면, 환경을 생각하면서도 맛과 편의성을 모두 잡을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되지 않을까.
우리의 식탁에서 선택하는 하나의 과일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마트에서 바나나를 집기 전에, 탄소 발자국이 적은 로컬 푸드를 한 번 더 고려해보자. 머지않아, 한국에서 재배된 ‘코리안 바나나’ 으름이 대형 마트의 진열대를 채우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1.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kebia_in_PNW.jpg#/media/File:Akebia_in_PNW.jpg
2.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Inside_a_wild-type_banana.jpg#/media/File:Inside_a_wild-type_banana.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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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속 가능 실험실]은 지구를 살리기 위해
고등학교 학생들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기상천외하고 실천적인 과학을 다룹니다."
마트에 갔을 때 볼 수 있는 풍경을 상상해볼까? 선명한 색의 토마토, 탐스러운 포도, 달콤한 과자, 신선한 돼지고기 등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여기서 스스로에게 매우 낯선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이들 중 무엇이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었고, 무엇이 수입된 것일까?"
우리는 이 질문을 얼마나 자주 떠올릴까? 이 낯선 질문을 일상에서 더 많이 떠올릴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농산물과 수입산 농산물을 구별하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환경을 위한 중요한 실천이기 때문이다. 특히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 관점에서 보면 그 의미는 더욱 커진다. 탄소 발자국은 특정 활동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을 의미하며, 이는 온실가스로 작용해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킨다. 전 인류가 협업하여 탄소 발자국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이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수입산 과일과 식품은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 오랜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대량의 화석연료가 사용되며, 일부 제품은 포장 작업을 위해 또 다른 국가를 경유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에서 잡힌 대구는 자국에서 판매되기 전에 중국을 거쳐야만 한다. 중국에서 대구를 손질하는 데 드는 인건비가 낮기 때문이다.
자국에서 생산되는 상품을 충분히 소비할 수 있음에도 외국 농산품을 소비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스페인에서는 아르헨티나에서 수입된 레몬이 식료품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정작 스페인에서 재배된 레몬은 다 소비되지 못한 채 땅에서 썩고 만다. 자국에서 충분히 생산하고도 외국 농산물을 소비하는 이러한 구조는 글로벌 유통망이 경제적으로는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환경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앞서 살펴본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글로벌 유통망이 터무니없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가장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형태라는 사실을 짚고 갈 필요가 있다. 만약 경제적으로 손해가 발생하는 구조라면, 이런 유통망이 유지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유통망이 환경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오직 경제적 논리로만 작동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불필요한 탄소 배출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비효율적인 글로벌 유통망을 개선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소비자들이 수입산 농산물보다 지역에서 생산된 로컬 푸드를 선호하는 것이다. 환경을 파괴하는 유통망 구조가 더 이상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는다면, 그 유통망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지역에서 생산된 로컬 푸드를 선택하는 것은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친환경 소비 방식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로컬 농산물로는 딸기, 토마토, 가지, 버섯 등이 있다. 그런데 바나나는?
바나나의 원산지는 인도와 말레이시아이다. Musa basjoo와 같은 냉해에 강한 품종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바나나는 열대 과일이기에 우리나라의 혹한기를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바나나는 거의 수입산이다.
바나나는 전 세계적으로 소비량이 많은 과일 중 하나로, 생산지에서 소비지 간의 거리가 매우 멀어 많은 탄소 발자국을 남기는 과일이다. 특히 바나나는 생산지에서 13.5도의 온도를 유지하는 특수 컨테이너로 운송되며, 유통업체가 원하는 시기에 맞춰 후숙 과정을 조절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에너지가 소비되어 탄소 배출이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사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코리안 바나나'가 있다. 바로 으름이다.

으름은 한국, 중국, 일본의 산지에서 자라는 야생 과일로, 특유의 달콤하고 크리미한 맛 덕분에 바나나와 비슷한 풍미를 지닌다. 더욱이 으름은 우리나라의 기후에 적응해 자연적으로 자라기 때문에 별도의 온실 재배나 장거리 운송이 필요 없다. 따라서 으름을 소비하는 것만으로도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으름이 바나나를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씨앗이다. 현재의 으름 열매는 씨앗이 과육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 과육을 씹는 것이 아니라 씨앗에 붙은 과육을 빨아 먹어야(?) 하는 형국이라, 먹는 과정의 불편함 때문에 대중적인 과일로 자리 잡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그런데 혹시 개량되기 전 바나나의 열매를 본 적 있는가?

충격적이게도, 개량되기 전 바나나는 지금의 으름과 비슷하게 과육 속에 씨앗이 잔뜩 들어 있었다. 우연히 씨를 맺지 못하는 돌연변이 바나나가 발견되었고, 이를 무성생식으로 복제하면서 우리가 아는 바나나가 대중화되었다. 그렇다면 같은 원리를 이용해 으름의 씨앗 문제를 해결한다면 으름 역시 바나나 못지않은 국민 과일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씨 없는 과일을 개발한 사례는 이미 많다. 씨 없는 수박, 씨 없는 포도 등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에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해 작물의 씨앗 크기를 줄이는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으름 역시 이러한 육종 기술을 적용하면 보다 대중적인 과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만약 씨 없는 으름이 보급된다면, 환경을 생각하면서도 맛과 편의성을 모두 잡을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되지 않을까.
우리의 식탁에서 선택하는 하나의 과일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마트에서 바나나를 집기 전에, 탄소 발자국이 적은 로컬 푸드를 한 번 더 고려해보자. 머지않아, 한국에서 재배된 ‘코리안 바나나’ 으름이 대형 마트의 진열대를 채우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1.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kebia_in_PNW.jpg#/media/File:Akebia_in_PNW.jpg
2.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Inside_a_wild-type_banana.jpg#/media/File:Inside_a_wild-type_banana.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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