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속 가능 실험실]은 지구를 살리기 위해
고등학교 학생들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기상천외하고 실천적인 과학을 다룹니다."

씨 없는 수박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씨 없는 수박을 만드는 원리에 대해 알아보자. 흔히 우장춘 박사가 씨 없는 수박을 발명했다고 잘못 알려져 있지만, 사실 우장춘 박사는 씨 없는 수박을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했을 뿐이다. 씨 없는 수박은 일본에서 처음 개발되었다. 우장춘 박사는 씨 없는 수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업적을 남겼지만, 이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해 보자.
씨 없는 수박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정상적인 수박 씨앗이 필요하다. 이 씨앗에 콜히친(colchicine)이라는 물질을 처리한다. 콜히친은 세포 분열 과정에서 염색체를 나누는 역할을 하는 방추사의 기능을 방해한다. 방추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세포 분열이 멈추고, 염색체는 그대로 복제된 상태로 남게 된다. 그 결과, 염색체의 개수가 두 배로 증가한다.
사배체(4n)식물의 탄생
대부분의 생물은 체세포에 두 벌의 염색체를 지니며, 이를 이배체(2n) 상태라고 부른다. 여기서 ‘두 벌’이란, 부모 각각으로부터 물려받은 염색체가 같은 종류끼리 2개씩 짝을 이룬다는 뜻이다 이렇게 염색체가 몇 개씩 짝을 이루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표현을 핵상이라 하며, 생물의 유전적 구조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 개념 중 하나다.
▲ 이배체 수박의 염색체 상태
수박 역시 일반적인 이배체 식물로, 정상적인 수박의 체세포에는 염색체가 총 22개 존재한다. 그런데 이 씨앗에 콜히친을 처리하면 세포 분열 과정이 방해받으며 염색체 수가 두 배로 증가하게 된다. 그 결과, 하나의 세포에 염색체가 44개 존재하게 되며, 기존처럼 두 개씩 짝을 이루는 대신 네 개씩 묶인 구조가 형성된다. 이처럼 염색체가 네 세트로 구성된 상태를 사배체(4n)라고 한다.
▲ 사배체 수박의 염색체 상태
사배체 수박은 씨 없는 수박을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후 단계에서는 사배체 수박과 이배체 수박을 교배하여 삼배체(3n)를 만드는 과정이 이어진다.
감수분열의 원리를 활용한 삼배체(3n) 식물의 탄생
체세포의 기본 핵상인 이배체(2n)는 감수분열을 통해 변화한다. 감수분열이 일어나면 엄마와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염색체가 분리되어 각각의 세포로 들어가면서 염색체 수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 결과, 이배체(2n)였던 핵상이 단배체(n)로 바뀌고, 이렇게 만들어진 생식세포는 핵상이 단배체(n)이다.
그렇다면, 사배체(4n) 수박이 감수분열을 하면 어떤 생식세포가 만들어질까? 답은 이배체(2n) 생식세포다. 생식세포이지만 핵상이 2n인 것이다. 이 특별한 2n 생식세포가 정상적인 n 생식세포와 만나 수정이 이루어지면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3n 핵상을 가진 삼배체 수정란이 탄생하는 것이다.
▲ 삼배체 수박의 염색체 상태
이 삼배체 수정란이 세포분열을 통해 자라 어른 수박이 되었다고 상상해보자. 그런데 이 어른 수박은 감수분열이 가능할까? 감수분열을 하려면 핵상을 절반으로 줄여야 하는데, 3은 홀수이므로 2로 나눌 수 없다. 즉, 정상적인 감수분열이 불가능하다. 이로써 생식세포를 만들 수 없고, 결과적으로 씨를 맺지 못하는 수박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씨 없는 수박의 배경에는 이렇게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생물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삼배체 식물이 외래종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씨 없는 수박처럼, 삼배체 식물은 감수분열이 되지 않아 번식을 하지 못한다. 이 특징은 단순히 씨가 없어 먹기 편하다는 장점을 넘어, 토착 생태계에 외래 식물의 유전자가 퍼지는 것을 막는 데에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만약 외래 식물을 격리되지 않은 환경에서 키우게 되면, 외래 식물의 생식세포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야생 식물에 전달되어 외래 유전자가 생태계로 도입되어 생태계의 교란을 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 양배추 및 배추와 교잡이 가능한 모래냉이, 소래풀 등의 근연종이 국내에서 재배 또는 자생하고 있다.[1] 하지만 삼배체 외래 식물을 재배한다면, 그 식물은 생식세포를 만들지 못하므로 외래 유전자가 퍼지지 못하게 된다.
또한 삼배체 식물은 일반적으로 줄기나 잎, 열매가 더 크고 광합성 산물을 많이 저장해 건조나 염 스트레스 같은 환경 조건에도 강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2] 이는 씨앗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아낄 수 있어서이다. 광합성 산물을 많이 저장하면 식물의 탄소저장 효과가 증가하는 것이므로, 기후변화 완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덕분에 삼배체는 농업과 원예, 임업에서 새로운 품종을 만들기 위한 중요한 선택지로 주목받고 있다. 보기에는 단순한 ‘씨 없는 식물’이지만, 알고 보면 생태계 관리와 기후 대응력까지 고려한 똑똑한 기술이 숨어 있는 셈이다.
삼배체 식물에 대한 비판
하지만 불임성이라는 특성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삼배체 작물은 씨를 맺지 못하므로, 삼배체 식물을 재배하는 농민은 매년 새로운 씨앗을 기업으로부터 구매해야만 하는 구조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식량 생산과 종자 보급의 주도권이 특정 기업에 집중되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삼배체 식물은 유성생식(씨앗을 통한 번식)이 아닌 무성생식(꺾꽃이를 통한 번식)으로 증식되기 때문에, 급격히 변하는 기후와 전염병에 적응할 수 없다는 단점을 지닌다. 이는 기후위기 상황에서 지역 농업의 자립성과 생물다양성 유지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지역에 맞는 농업 생태계가 지속 가능하려면, 생식 가능성이 있는 작물과 삼배체 식물의 균형이 중요하다. 단기적인 생산성과 편의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유전자 다양성과 종자 주권을 함께 고려하는 과학자와 시민의 관심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
[1]Weed Turf. Sci. 11(4):337-351
[2]Czech J. Genet. Plant Breed., 52, 2016 (2): 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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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없는 수박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씨 없는 수박을 만드는 원리에 대해 알아보자. 흔히 우장춘 박사가 씨 없는 수박을 발명했다고 잘못 알려져 있지만, 사실 우장춘 박사는 씨 없는 수박을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했을 뿐이다. 씨 없는 수박은 일본에서 처음 개발되었다. 우장춘 박사는 씨 없는 수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업적을 남겼지만, 이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해 보자.
씨 없는 수박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정상적인 수박 씨앗이 필요하다. 이 씨앗에 콜히친(colchicine)이라는 물질을 처리한다. 콜히친은 세포 분열 과정에서 염색체를 나누는 역할을 하는 방추사의 기능을 방해한다. 방추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세포 분열이 멈추고, 염색체는 그대로 복제된 상태로 남게 된다. 그 결과, 염색체의 개수가 두 배로 증가한다.
사배체(4n)식물의 탄생
대부분의 생물은 체세포에 두 벌의 염색체를 지니며, 이를 이배체(2n) 상태라고 부른다. 여기서 ‘두 벌’이란, 부모 각각으로부터 물려받은 염색체가 같은 종류끼리 2개씩 짝을 이룬다는 뜻이다 이렇게 염색체가 몇 개씩 짝을 이루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표현을 핵상이라 하며, 생물의 유전적 구조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 개념 중 하나다.
수박 역시 일반적인 이배체 식물로, 정상적인 수박의 체세포에는 염색체가 총 22개 존재한다. 그런데 이 씨앗에 콜히친을 처리하면 세포 분열 과정이 방해받으며 염색체 수가 두 배로 증가하게 된다. 그 결과, 하나의 세포에 염색체가 44개 존재하게 되며, 기존처럼 두 개씩 짝을 이루는 대신 네 개씩 묶인 구조가 형성된다. 이처럼 염색체가 네 세트로 구성된 상태를 사배체(4n)라고 한다.
사배체 수박은 씨 없는 수박을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후 단계에서는 사배체 수박과 이배체 수박을 교배하여 삼배체(3n)를 만드는 과정이 이어진다.
감수분열의 원리를 활용한 삼배체(3n) 식물의 탄생
체세포의 기본 핵상인 이배체(2n)는 감수분열을 통해 변화한다. 감수분열이 일어나면 엄마와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염색체가 분리되어 각각의 세포로 들어가면서 염색체 수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 결과, 이배체(2n)였던 핵상이 단배체(n)로 바뀌고, 이렇게 만들어진 생식세포는 핵상이 단배체(n)이다.
그렇다면, 사배체(4n) 수박이 감수분열을 하면 어떤 생식세포가 만들어질까? 답은 이배체(2n) 생식세포다. 생식세포이지만 핵상이 2n인 것이다. 이 특별한 2n 생식세포가 정상적인 n 생식세포와 만나 수정이 이루어지면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3n 핵상을 가진 삼배체 수정란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 삼배체 수정란이 세포분열을 통해 자라 어른 수박이 되었다고 상상해보자. 그런데 이 어른 수박은 감수분열이 가능할까? 감수분열을 하려면 핵상을 절반으로 줄여야 하는데, 3은 홀수이므로 2로 나눌 수 없다. 즉, 정상적인 감수분열이 불가능하다. 이로써 생식세포를 만들 수 없고, 결과적으로 씨를 맺지 못하는 수박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씨 없는 수박의 배경에는 이렇게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생물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삼배체 식물이 외래종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씨 없는 수박처럼, 삼배체 식물은 감수분열이 되지 않아 번식을 하지 못한다. 이 특징은 단순히 씨가 없어 먹기 편하다는 장점을 넘어, 토착 생태계에 외래 식물의 유전자가 퍼지는 것을 막는 데에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만약 외래 식물을 격리되지 않은 환경에서 키우게 되면, 외래 식물의 생식세포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야생 식물에 전달되어 외래 유전자가 생태계로 도입되어 생태계의 교란을 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 양배추 및 배추와 교잡이 가능한 모래냉이, 소래풀 등의 근연종이 국내에서 재배 또는 자생하고 있다.[1] 하지만 삼배체 외래 식물을 재배한다면, 그 식물은 생식세포를 만들지 못하므로 외래 유전자가 퍼지지 못하게 된다.
또한 삼배체 식물은 일반적으로 줄기나 잎, 열매가 더 크고 광합성 산물을 많이 저장해 건조나 염 스트레스 같은 환경 조건에도 강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2] 이는 씨앗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아낄 수 있어서이다. 광합성 산물을 많이 저장하면 식물의 탄소저장 효과가 증가하는 것이므로, 기후변화 완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덕분에 삼배체는 농업과 원예, 임업에서 새로운 품종을 만들기 위한 중요한 선택지로 주목받고 있다. 보기에는 단순한 ‘씨 없는 식물’이지만, 알고 보면 생태계 관리와 기후 대응력까지 고려한 똑똑한 기술이 숨어 있는 셈이다.
삼배체 식물에 대한 비판
하지만 불임성이라는 특성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삼배체 작물은 씨를 맺지 못하므로, 삼배체 식물을 재배하는 농민은 매년 새로운 씨앗을 기업으로부터 구매해야만 하는 구조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식량 생산과 종자 보급의 주도권이 특정 기업에 집중되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삼배체 식물은 유성생식(씨앗을 통한 번식)이 아닌 무성생식(꺾꽃이를 통한 번식)으로 증식되기 때문에, 급격히 변하는 기후와 전염병에 적응할 수 없다는 단점을 지닌다. 이는 기후위기 상황에서 지역 농업의 자립성과 생물다양성 유지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지역에 맞는 농업 생태계가 지속 가능하려면, 생식 가능성이 있는 작물과 삼배체 식물의 균형이 중요하다. 단기적인 생산성과 편의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유전자 다양성과 종자 주권을 함께 고려하는 과학자와 시민의 관심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
[1]Weed Turf. Sci. 11(4):337-351
[2]Czech J. Genet. Plant Breed., 52, 2016 (2): 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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